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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의 골퍼는 세종대왕

                                 

b_arrow2.gif골프는 중국에서 발생했다.

 골프가 서양인들이 만들어 낸 스포츠라는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흔치 않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 중국 스포츠계는 골프가 중국에서 발생한 스포츠라고 주장

하고 있다. 동아일보 제 21443(1991. 4.14)호는 '중국, 골프의 본고장 자처' 라는

제호의 기사에서 14세기에 그려진 여인들의 골프경기 모습이 실린 사진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기사는 놀랄 만한 것이 못된다. 왜냐하면 고대의 스포츠를 연구

하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골프와 유사한 '추환'이란 경기가 13세기를 전후한 원나라

때에 이미 실시되고 있었다는 사실이 이미 잘 알려져있었기 때문이다. 1955년에 실본의

사세지마교수(게이오대학)는 이 추환에 관한 논문을 일본체육학회에 보고한 바 있다.

 더구나 1982년 일본의 쯔꾸마대학 도서관에서 원나라때의 것으로 보이는 '환경'이란

책을 발견한 바 있는데, 이 책의 저자는 미상인 채였다. 이 책을 기본으로 하여 1982년

필자가 일본체육학회에서 '한국의 타구희에 관하여'란 주제의 논문을 발표한 바 있다.

그때 사세지마 교수와 토론하는 자리에서 '환경'의 저자가 '영지재노인'이라는 지적을

받았으나 이'영지재노인'의 출신이 전혀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더 이상의 토론을 할

수가 없었다. '환경'은 송나라 때에 유행한 '추환'에 관한 경기지도서이다.

 이 추환의 경기방법 즉 후 환채, 볼, 타법, 구멍에 볼을 넣는 법 등은 오늘날의 골프경기

를 한문 으로 번역해 놓은 듯하다.

b_arrow2.gif'조선왕조실록'엔 봉희로 기록

 우리나라에서는 이 '추환'이란 경기가 '봉희'라는 이름으로 15세기의 조선왕조실록에

실려있다. 이 봉희에 대해 이희승박사의 '국어대사전'은

 "옛날부터 행하여져 왔던 병사들의 놀이, 놀기 위해 봉을 가지고 무기로써 시합함"

이라 명하고 있으며 최남선선생은

"격구의 다른 이름"

이라 하였다.

한국체육사의 저자인 나현성박사는

"궁중을 중심으로 상층 조신 사이의 무예적인 유희"

로 각각 이해하고 있었다.

 '봉희'라는 용어가 처음 보이는 것은 '조선왕조실록'의 세조원년 1455 9월조에 다음과

같이 보인다.

"임금이 사정전 서쪽 계단 위에서 봉희를 구경한다. 종친 . 재추 . 승지 . 주서 . 사관과

사복등을 좌우로 나누어 승부하게 하고 승자에게는 각각 환도를 하사하다"

그러나 실제로 이 '봉희'라는 경기가 시행된 것은 이보다 30년이나 앞선 세종대왕 3년

(1421)의 기록에 나타나고 있다.

"태상왕과 임금이 신궁의 내정에서 공을 치기 시작하다. 날씨가 추워 밖으로 나가지 못해

 이 놀이를 한다. 봄이 되면 그친다. 함께 공을 친사람은 효령대군 보, 익평부원군 근,

 경녕군 배,의녕군 원생, 순평군 군생, 한평군 조연, 도총제 이증, 이심 및 광록경 권영균

 이다"

 이 기록만 본 다면 타구를 그대로 골프로 해석할 수 만은 없는 것처럼도 여겨진다.  공을

스틱이나 채로 치는 것 모두를 한자로 쓸 때는 타 혹은 격 으로 표현하기 때문인데,

고려시대에 유행 했던 격구는 마상타구였다.

 그러나 태종과 세종대왕이 종친, 대신들과 실시했던 타구는 말 위에서 치는 격구경기가

아닌 봉희, 즉 골프였던 것이다. 이것은 그 타구의 방법을 보면 즉시 알 수 있다. 봉희의

실시방법에 대한 서술은 '조선왕조실록' 에 두군데에서 볼 수 있다. 하나는 세종 3년의

기사로 다음과 같다.

 "공을 치는 방법은 편을 갈라 승부한다. 마치 숟갈 같이 생겼는데 크기는 손 바닥만 한다.

물소가죽으로 두꺼운 대나무를 싸서 자루를 만든다. 보올은 마뇌 혹은 나무로 만드는데

달걀만 하다. 땅에 주발 만한 구멍을 파 이것을 와아라한다. 전각을 격하여 혹은 계단 위에

또는 평지에 구멍을 만든다. 치는 사람은 무릎 꿇거나, 서서 스틱으로 볼을 친다. 볼은 튀어

오르고, 슬라이스나 훅이 나기도 하며 굴러서 구멍 가까이에 이르면 좋다. 볼이 구멍에 들어

가면 점수를 얻는다. 규칙이 대단히 복잡하다."

 다른 기록은 세조원년의 것인데 보다 상세하다.

 "공을 치는 법은 수인 혹은 10여인 많이는 수십인을 좌우로 나누어 승부한다. 스틱의 모양은

  손 바닥크기의 수저 같은데 두터운 대나무에 물소가죽을 싸서 만든다. 가죽이 얇으면 볼이

  뜨고 두터 우면 뜨지 않는다. 또 곤봉으로 볼을 치면 볼이 뜨지 않고 구른다. 두텁고 얇고

  크고   작으멩 따라  스틱의 이름이 각기 다르다. 볼은 나무로 만들며 때로는 마뇌를 쓰기도

  한다. 크기 는 계란만 하다. 한 번 쳐서 구멍에 들어가면 2점을 얻는다. 한번 쳐서 들어가지 않으면 볼이

  멎은 곳에서 두세 번이를  쳐서 들어가면 1점을 얻는다. 한번 쳐서 들어가면 다른 볼은 치지 않는

  다. 치면 죽는다. 두번 쳐서  들어가면 다른 볼을 치지 않는다. 치면 죽는다. 이후는 같다. 한번 친

  볼이 다른 볼과 접촉

 해도 죽지 않는다. 다시 친 볼이 다른 볼과 부딪히면 죽는다. 이후 역시 같다. 혹은 서서 치거나 무릎

 을 꿇고  때린다. 규칙이 매우 많다."

 이렇게 되면 한국 최초의 골퍼는 세종대왕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진수 : 한양대학교 교수)

한국 스포츠 1991. 9.4 발췌